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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현동 화재 참사 그날의 비극 꼬꼬무 이야기

by 장동걸 2022. 4. 8.

인천의 한 2층 호프집에 시험이 끝난 미성년 학생들이 자리를 가득 메웠고 지하에 공사 중이던 노래방에서 아르바이트생 두 명의 불장난으로 시작된 화재는 수많은 인명피해를 낳았다. 우리나라 역대 3번째 많은 인현동 화재 사건이다.

꼬꼬무프로그램에서 대화하는 장면 사진
꼬리에꼬리를무는 그날이야기 사진

1999년 인현동 화재 사건 그날의 비극

1999년 인천 인현동의 3층 건물에 불이 난 이 화재사건은 수많은 학생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당시 한창 공사 중이던 지하 노래방에 근무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의 불장난에서 시작된 불은 순식간에 건물 전체를 뒤덮었다.

 

피해 규모는 사망 56명, 부상 78명이다. 이중 2층 호프집에서만 사망자가 나왔는데 이유는 불법으로 개조한 창문과 비상탈출구를 화장실로 만든 업주의 불법영업이 사고를 키웠다. 미성년자들을 자신이 운영하는 호프집에 받기 위해 지역 공무원과 경찰들에게 정기적 뇌물상납을 해오던 업주는 나중에 징역 5년의 선고를 받게 된다. 하지만 뇌물을 수수한 공무원과 경찰들은 무혐의로 풀려나며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샀다. 

 

호프집 건물 구조는 총 3층으로 지어진 건물이었으며 지하에는 공사 중이었던 노래방, 1층은 고깃집, 2층은 호프집, 3층은 당구장이었는데 1층 고깃집에 있던 사람들은 불이 나자마자 상황을 인식하고 탈출했고, 3층 당구장 손님들은 3층에서 뛰어내려 부상 정도로 끝났다고 한다. 하지만 2층의 학생들은 탈출이 여의치 않았다. 화재를 인식하고 출입문을 통해 빠져나가려 했지만 당시 호프집 직원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았다는 후문이 있는데, 이유는 계산을 안 해서 나가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 실랑이를 벌이다가 탈출의 골든타임을 놓친 학생들은 비상탈출구 표시가 되어있는 쪽으로 향하게 되는데 그곳은 꽉 막힌 화장실이었고 결국 그곳이 그 학생들의 마지막으로 서있던 장소가 되고 만다. 

 

 

꼬꼬무에서 장도연 대화사진
꼬리에꼬리를무는 그날이야기 사진

화재의 후유증과 인현동 호프집 사장 근황

그 당시 호프집의 위치는 인천시 중구에 있었는데 그곳은 당시 인천의 중심지였다. 호프집 화재 이후 수많은 불법행위들과 공무원들과의 유착관계들이 낱낱이 드러나게 되고 학생들의 희생이 워낙 컸기 때문에 후유증이 점차 크게 나타나게 된다. 인천 최대 유흥지역이었던 이곳은 지역상권이 위축되어 도심 지위가 구월 동등으로 넘어가게 될 만큼 엄청난 후유증을 겪는다. 현재까지도 인천의 중심지였던 중구와 동구가 당시 사건으로 인해 피폐함을 면치못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한다. 

 

호프집 사장은 교도소에서 5년간 수감 후 사회에 나와 CCM 가수로 변신해 교도소 수감자들을 위한 기독교 노래를 부르고 다닌다고 전해진다. 이를 들은 피해자 가족들은 더욱 분노를 하게 되는데, 반성하는 듯한 그의 행동에 대해 진정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의 간간히 반성하는 태도로 인해 면죄부를 주기에는 많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피해자 가족들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된다. 

 

인현동 호프집 생존자

그 당시 생존했던 피해자 중 한 명이 2000년 방영된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하여 관심을 모은 적이 있다. 원하던 꿈을 위해 곽은희 씨는 화상부위 수술도 안 한 채 공부에 매진해 마침내 미국 일리노이주 주립대학에 입학을 했다. 방송에서 자신은 떳떳이 얼굴을 드러내 놓고 생활하고 있다며 화상환자들을 따뜻하게 봐달라며 호소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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